5 steps놀라웠던 5 steps 체험기 by. 라일락님(50대)



나는 원데이 클래스 수업을 통해서 MFHS 명상 센터와 인연을 처음 맺었다.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수련을 접한 나는 중년의 나이인 51세의 나이에 다시 나 자신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그냥 들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을 배우든지 잘 배우거나 빠른 습득이 늦은 나는 쉽게 나 자신을 챙기는 삶을 살 수 없었다. 남들 다하는 운동이며, 남들 다하는 수영과 낚시, 남들 다하는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여기저기 굳고, 아프고, 손발이 붓고,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팠다. 하지만 현실의 삶이라는 환경을 극복하고 꾸준히 무언가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와는 4살 차이인 누님이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과로로 인한 뇌경색에 의한 것이었다. 병상에 누워서 혼수상태와 정상을 오가던 누님을 자주 가 뵐 수가 없었다.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팬데믹 사태는 누님을 뵈러 가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구 경북 지역이 초기에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바람에 경북에 거주하는 나는 코로나 보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죄인이 되어 있었고, 모든 곳에서 거부당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조금 완화되었을 때도 병원에서는 대구 경북 사람은 면회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한 누님을 보러 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병원과 저 병원을 전전하던 누님은 며칠을 살지 못하고, 손써볼 사이도 없이 악화되어서 돌아가셨다. 장례식 역시 코로나 사태로 아주 냉랭하였다.

같은 직장의 동료 직원들조차도, 대표로 한 두 분 오실 뿐이었다. 같은 시기에 장례를 치르는 분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주 적은 인원이 오는 장례식장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열심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누님은 어려서 머리가 좋았다. 아이큐가 168이었는데 정말 열심히 사셨지만, 자신의 뜻에 맞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젊은 나이에 과로로 인해서 세상을 등진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쓸쓸한 장례식장과 장지는 이전에 내가 경험한 장례들은 호강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체험하게 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다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적어도 매일 조금씩이라도 규칙적으로 산책을 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매일 사람들을 피해서, 코로나 균을 피해서 산책을 하면서 나는 사색에 잠겼고, 내 형편에 맞는 무언가를 찾아서 노력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졌다.

 

본격적인 운동을 하기에는 무리인 내 몸의 형편을 고려할 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명상하는 것이었다. 명상하면 상실감과 괴로움에서 조금은 빠져나올 것 같았고, 때때로 명상 클래스에서는 쉬운 동작의 운동요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니 이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막상 명상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니 선뜻 들어가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의 한 명상 센터를 검색에서 보게 되었다.

오래전 살던 부산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낭만과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마침 명상 센터도 추억의 장소인 광안리 바닷가 옆에 있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하고, 수업이 끝나면 바닷가도 산책할 겸 해서 수강을 하고, 원데이 클래스를 듣게 되었다.

 

원데이 클래스 강의를 들으면서 강의하시는 강사님들이 이전에 보아오던 명상 강사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명상이 갖는 특유의 무거움, 어두움이 없었다.

명상은 좋은데 다 하고 나면 왠지 축 처지는 것이 항상 문제였다. 그런데, 이곳의 명상법은 명상을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아주 가볍고 상쾌해졌다. 또한, 여타의 단체처럼 무릎을 꿇고 침묵 속에서 받드는 자세로 배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질문에 대한 응대 또한 좋았다. 대체로 명상 수업은 질문에 대한 답이 거의 정해져 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책들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을 반복해서 답하는 수준이 거의 대부분의 명상 강의였다. 그런데, 여기는 달랐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배워보고 싶었다. 5 스텝이라는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수업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교육을 신청하게 되었다.

 

내심 마음속에 무거운 짐으로 남은 누님을 보내 드리고,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학습 목표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심 어지러운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소박하나마 나를 챙기는 삶의 시작으로 삶고 싶었던 것이다. 누님의 죽음은 나에게 ‘다음은 너야, 다음은 네 차래란 말이지, 준비는 되어 있니?’

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았다. 다음은 내 차례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기게 된 것이다. 유독 단명하는 사람이 많은 집안 내력도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데 한몫한 것이다.

 

각박한 세상, 인간성이 심하게 상실된 세상에서 이런 말을 누구와 나눌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서서 살다 간 인생의 선배님들이 생각나고, 간간이 그분들이 하신 말들이 뇌리를 스쳤다.

“인생 순간이다.”

“눈 깜짝하니 60이더라.”

“누구는 늙고 싶어서 늙었니?”

“옆집 000가 죽었다더라. 남일 같지가 않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나는 생각을 비우고, 감정을 마취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런 생각들은 없애려고 노력할수록 방심한 틈을 타서 불쑥 올라오곤 하였다. 부모님을 보내 드리던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누님이라 특별한 느낌이 있었나….

 

갑자기 새벽에 눈이 떠지고, 악몽에서 깨어나서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잊고자 한 나날들이었다.

 

거리가 조금은 멀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좋았다. 나의 일상에서 멀어지면 괴로움으로부터도 더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가며, 산천 구경하는 기분으로 여행하듯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데이 클래스를 강의하시던 선생님들도 친절하셨지만, 5 스텝을 강의하시는 원장 선생님은 남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아주 차분하면서도 쳐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명상 강의는 '나는 이만큼 노력해서 이루었으니 자네들은 열심히 해서 따라오도록 해'하는 투의 진행이거나, 전문적인 미사여구를 너무 많이 써서 단어의 뜻을 생각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인도의 요가에서 파생한 명상이나, 요가 명상 수업 시간에 더욱 그랬다. 알 수 없는 인도 용어를 외우느라 고생하였다. 그렇다고 그런 수업을 진행하시는 분들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언어 능력이 떨어지어서 배우기 어려웠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쉬운 언어인 한국말로 강의하시는 원장 선생님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친절하고, 정확한 지도는 예상을 뛰어넘는 효과를 경험하게 하였다.

 

한차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되돌아가면, 3일 동안 몸을 풀지 않아도 될 만큼 몸이 가벼웠다. 이것은 명상 전에 가볍게 몸을 풀어보자고 하시는 수업의 효과다. (이것의 이름이 테라무브라는 움직임 명상의 한 종류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늘 배움이 늦어서...) 이것의 효과가 나의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운동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2시간 30분 동안 격하게 운동을 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이 가벼운 명상 전 몸풀기로 달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도 잘 빠지지 않던 뱃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첫 시간에는 배꼽 위에 있는 뱃살이 움푹 들어간 것을 보고 놀랐다. 이 정도 뱃살이 빠지려면, 나의 경우에는 김밥과 오이만 들고, 8시간 이상의 산행을 3~4일 이상 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나마, 젊을 때 말이지, 요즘은 무릎과 발목이 아파서 산행하지 못한지 오래되었다. 뜻밖의 효과에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매 주 교육을 받을 때마다 생각지도 않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꼬리뼈를 다쳐서 아프던 통증이 사라지고, 어깨의 근육이 찢어져서 아픈 통증이 사라졌다. 이것은 병원에서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한 것이었다. 진통제를 6개월 이상 먹다가 진통제 부작용으로 손발이 붓고, 온몸이 퉁퉁 부어서 잠을 잘 수 없어 새벽에 잠을 깨던 고통에서 벗어난 자유를 느꼈다. 이것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그저, 몸만 팅팅 붓고, 숙면을 취할 수 없어서 뒤척이는 긴 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니, 자연히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목덜미가 충혈되고, 튀어나오고, 목과 허리는 점차 구부정히 해졌다. 그래서, 허리의 통증만 3곳 이상이었다. 다행히 추간판은 튀어나왔지만, 통증이 없어서 다행인 수준이었다.

 

5 스텝은 5주간 5회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었다. 매주 한 번 교육에 참여하는 것뿐인데 마치, 매일 집에서 여분의 수련을 계속한 것 같은 효과가 생겼다. 이것은 뭐라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선골을 다쳐서 걸을 때마다 좌우의 발이 당기고 아픈 곳이 모두 사라졌다.

어깨의 통증도 사라지고, 손발이 붓는 것도 사라졌다. 목 뒤의 거북목도 사라지고, 심하게 충혈되고, 뾰루지가 많던 것도 사라졌다.

목이 반듯해지고, 체형이 제법 반듯해졌다. 걸을 때 통증도 없어졌다.

그리고, 잠잘 때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반듯이 잘 수 없었는데, 가끔씩 반듯이 누워서 잘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몸의 변화는 마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몸이 가벼워지고, 바르게 펴지니, 마음도 여유가 조금씩 생겼다.

5주간의 수업을 받는 동안 나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는 사이에 누님에 대한 생각이 잠시 잊혀졌다. 나에게 나타난 큰 변화에 적응하느라 잊었던 것이다.

 

가벼운 명상이나 하면서 마음이나 달래야겠단 나의 단순한 생각은 뜻밖의 인연을 만나서 완전히 변화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업 끝나고 나면 해변을 거닐다 집으로 가는 재미로 나갔는데, 차츰 선생님들에게 배우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괴로워 왔던 일상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몸이 펴지고, 굽은 다리가 펴지고, 발이 전체가 바닥을 밟을 수 있게 되었고, 머리도 펴지고, 숙면도 하게 되었다.

 

내가 이곳을 선택한 처음의 이유는 사진으로 볼 때 내부 시설이 깨끗하고, 밝은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였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생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열과 성의를 다해서 지도하는 지도자분들의 열의가 싱그럽게 넘치는 공간이다 보니, 사진에서 보아도 어딘지 모르게 밝은 느낌이 배어 나왔던 것이다.

 

2020년에 내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은 이곳에 와서 명상 수업을 들은 일이다.

 

이곳에서 지도해 주시는 독특한 수업 방식은 뭔가 특별한 대가 있다. 과거 여러 곳에서 명상 수업을 받았을 때, 오랜 시간을 들여서 명상할 때 잠시 느낄 수 있었던 깊은 명상 상태는 명상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일어났다.

참,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 이래서 좋은 스승, 좋은 선생을 찾아야 하고, 자기에 맞는 스승을 찾아야 한다고 요가에서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말로 진행되는 수업을 열심히 따라 하기만 해도, 몸이 바르게 돌아오고, 통증이 사라지고, 마음의 괴로운 압박감이 사라졌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글을 빌어서, 배움이 굼뜬 저에게 명상을 가르쳐 주시느라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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